
»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 최원균-이삼순 노부부가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 집에서 소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봉화/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9 사람들 ⑤‘워낭소리’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소
영화 <워낭소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경북 봉화로 찾아간 지난 23일, 하늘은 낮은 자세로 내려와 있었다. 미처 떨어지지 못하고 얼어붙은 상수리나무 이파리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비를 맞았다. 평일의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취재 차량은 약속 시간을 1시간이나 앞질러 하눌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들머리에서 사람보다 먼저 사람을 맞은 것은 군청이 세운 워낭소리 푯말이었다. ‘워낭소리 로드, 소무덤 400m’.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소에게 먹일 ‘꼴’을 베던 밭 한쪽 구석에 ‘늙은 소의 무덤’이 있었다. “30년간 할아버지와 동고동락한 소의 마지막 안식처.” 푯말 사진 속의 늙은 소는 허벅지에 제 똥을 잔뜩 묻힌 채 절룩거리며 걷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는지, 밭 한가운데로 길이 생겼다.
#동지팥죽 최원균(81) 할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만날 나무하러 가요. 그 사람은 들에 사는걸요. 날만 새면 나가요. 못 말려요. 어릴 때부터 일만 해서 다리가 이런 데도 나가요.” 이삼순(78) 할머니는 검지 손가락을 곧게 펴서 땅을 향하게 하며 할아버지의 불편한 다리를 흉내냈다. 할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할머니의 언성이 높아졌다. 할머니의 허리는 영화 속에서보다 더 휘어 보였다. 무릎에 두 손을 대지 않고서는 서 있기조차 힘들어했다. 한 시간가량 지났을까. 할아버지가 소달구지에 땔나무를 한 짐 싣고 왔다. 할머니는 얼른 일어섰다. “나무 내리니껴?” “뭐?” “나무 내라?” “…” 할아버지의 귀는 영화 속에서보다 더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영화 속 젊은 소는 이제 중년이 되어 세번째 임신을 했다. 나무를 내리고 난 할머니는 점심을 준비했다. 할아버지는 위장복 무늬 모자를 벗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앉아서 쉴 때 할아버지는 한 폭의 정물화 같았다. 할머니는 동짓날 쑤었다며 팥죽을 내왔다. 할아버지가 방에서 팥죽을 먹을 때 소는 마당에서 사과를 먹었다. 할아버지는 옆방에서 팥죽을 먹는 취재진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비로소 말했다. “죽을 드셔서 되니껴?”
#서울구경 <워낭소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주말이면 관광버스 넉대가 한꺼번에 들이닥치기도 했다. 마구 들어와 방문을 열어보는 관광객도 있었다. “별사람 다 있어요. 귀찮아도 사람 사는 집에 사람 오는 걸 막을 수가 있나.” 할머니는 힘들어하면서도 심심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할아버지는 놀러도 안 가요. 소여물은 누가 주냐고, 다른 데다 매어놓으면 똥은 누가 치우냐고.” 봉화군수와 함께 <워낭소리>를 보러 가는 날도 할아버지는 가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여행 다니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던 할머니의 꿈은 내년에도 이뤄지기 힘들 것 같았다. 지난달 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에 간 것이 할아버지 생애 첫 서울 나들이였다. “서울 구경도 안 하고 죽어? 그렇게 나대 놓았더니” 겨우 갈 수 있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봉화 인터넷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큰아들이 점심시간을 틈타 잠시 들렀다. 아들은 아버지가 쌓아놓은 땔나무를 가리키며 “나무 사다 줄 테니까 하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수원에 사는 넷째아들은 지난여름 ‘아버지’라는 노래로 가수가 됐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담은 노래다. 할머니는 “우리 자식만한 애들이 없다”며 9남매 자랑을 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이례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에 대한 이 시대 모든 자식들의 미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시 생활에 지쳐 어머니 아버지를 잊고 살던 중년의 자식들은 때늦은 사과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사위어 가는 농촌의 마지막 풍경을 지탱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렇게 이 시대 부모님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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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봉화/이재성 기자 san@hani.co.kr
[2009 그 후 지금은] 워낭소리 `시즌 2`는 쌍방울소리 [조인스]
2009.12.15 10:58 입력 / 2009.12.15 14:57 수정
| “좋은데 가거래이”. 소는 갔지만 워낭은 농부의 집 처마에 남아 있다. | |
80 평생을 우직하게 땅을 지켜며 살아온 농부 최원균 할아버지와 그의 30년 동반자가 무덤덤하게 들려주는 워낭소리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까.
40년을 함께 산 소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2009년 12월 11일. 할아버지 부부가 살고있는 마을의 겉모습은 영화속 장면과 달리 많이 변해 있었다. 집 입구 도로 옆에는 넓은 주차장(400평방미터)이 만들어졌고 집으로 가는 길은 황토로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워낭소리’ 무대임을 알리는 안내판도 세워졌다.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싸리문을 밀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저놈 소새끼 때문에 내가 평생 고생”이라고 되내던 이삼순 할머니가 넓은 집안 이곳 저곳을 분주히 다니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습니까”
“남구(나무)하러 갔지”
오후 1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점심을 먹은 할아버지는 겨울이지만 집에 있지 못하고 또 일을 하러 나간 것이다. 나무를 하러 어디로 갔는지는 할머니도 “모른다”고 했다. 집에서 나와 소의 무덤이 있는 맞은 편 산 아래 밭으로 가보았다.
‘사람과 사랑을 울린 워낭소리 소 여기서 잠들다’
무덤 옆에는 조그만 안내판이 세워져 있을 뿐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반대편 수박밭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건강하시죠”
“누군교”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 방송국에 가이(가니) 참 너르데(넓데)”
최원균 할아버지는 낯선 사람이 기자임을 바로 알아챘다. 밭 가장자리 맨 땅에 주저앉아 나뭇가지를 잘라 묶는 손은 얘길 하면서도 느리지만 멈추질 않았다. 그 옆에는 영화에서 보던 리어커를 개조해 만든 수레와 소가 묵묵히 서있었다.
“몸이 편찮으시다는데 이렇게 일을 해도 괜찮습니까”
“골(머리)이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소가 있으니 (나무를) 안 할 수도 없고…”
할아버지의 새 동반자는 2005년 12월께 영주 우시장에서 찾았던 ‘부리는 소’ 바로 그 소다. 귀에는 영화에서 보던 노란 인식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워낭은 턱밑 양쪽에 두개를 달고 있었다. 이 동반자 역시 할아버지가 나무를 하는 사이 큰 눈을 껌벅껌벅하며 일이 끝나기를 무덤덤하게 기다릴 줄 알았다. 폐타이어를 이용한 할아버지의 '길 들이기'에 동반자가 감응을 한 것일까.
1시간 넘게 나무를 한 할아버지는 다발로 묶은 나무를 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영화속 장면처럼 수레 위에 올라앉았다. 수레를 끄는 소는 할아버지의 손짓에 따라 비탈진 밭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밭을 나와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자 할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왕복 2차선 아스팔트도로로 나오자 할아버지는 습관대로 머리를 푹 숙이고 자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느릿느릿 걷는 소와 수레는 10분도 안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둘째 아들과 대학생인 손녀가 달려와 할아버지와 소를 맞았다. 수레에 실린 나무를 다내려놓자 할아버지는 수레에서 해방시킨 소를 외양간으로 데려가 쉬게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미리 끓여놓은 쇠죽을 듬뿍 퍼 주었다.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은 자동차회사 영업사원이다. 수레 끄는 아버지와 자동차 파는 아들. 묘한 대비다.
“영화를 보니, 자식들은 딱 한번 나오던데요”
“영화 개봉 후 ‘불효’라고 욕 많이 먹었습니다”
| “워낭소리 여기서 잠들다”. 농부가 30년 동반자를 위해 자신의 밭 옆에 만들어 준 안식처. | |
워낭소리가 인기를 끈 후에도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의 내적인 생활은 바뀐 건 별로 없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사료 먹입시다. 농약 좀 칩시다"를 계속 되내고 있다. 한시도 몸을 놀리지 못하는 할아버지 덕분에 할머니 역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은 많이 달라졌다. 워낭소리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인해 할아버지 집은 '긴장 상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없는 싸리문을 만들었고, 봉화군청은 문 앞에 CCTV를 설치했다. 집 안에는 이동통신사 중계기까지 들어섰다.
농부와 소. 업(業)으로 연결된 두 동반자의 현재 나이는 할아버지 82세, 소 5세.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동행할 수 있을까.
워낭소리 '시즌 2'는 그때 이어진다.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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